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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30

“ITER는 내 운명” ···박주식 ITER 한국사업단 기술본부장

시스템 관리자   
https://fusionnow.kfe.re.kr/post/peoples/23


원자력 의학원, 포항 가속기, KSTAR 등 장치 건설 분양 경험 풍부
ITER 수석 엔지니어로 5년 간 근무 예정

 

박주식 ITER 한국사업단 기술본부장이 프랑스 카다라쉬의 ITER 국제기구 수석 엔지니어(Chief Engineer)로 4월 부임한다. 5년 예정이로 4월 1일부터 근무 예정인 박 본부장은 약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ITER 국제기구에 당당히 입성했다.

 

ITER는 한국, 미국, 유렵연합, 중국, 러시아, 일본, 인도 등 7개국이 공동으로 핵융합 실증로를 건설하는 국제 거대 과학프로젝트로서, 사업을 총괄하는 ITER 국제기구는 각 참역국에서 파견한 인력으로 구성된다. 매년 부정기적으로 3-5년 임기의 국제기구 인력을 채용하는데 보통 10대 1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현재 25명의 한국인이 프랑스 카다라쉬에 위치한 ITER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다.

 

ITER는 국제협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각국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야 한다. 따라서 조직 구조가 수평적이며 참여국의 의견을 잘 조율해 한 목소리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게 관건이다. 기술 분야의 최고 결정기구는 사무총장, 수석 사무차장, 통합부서장, 수석 엔지니어 등 4명이 속한 High Level Technical Meeting이다. 박 본부장은 수석 엔지니어의 역할을 맡게 되는데 수석 엔지니어 자리는 핵융합 및 관련 분야에서 20년 이상 근무해야 하고 건설 프로젝트 유경험자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한 사람만이 지원 가능하다.

 

“사명의식 가지고 신기술 습득하겠다”

“ITER 기구로 가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도전입니다. ITER는 국제적인 협력 프로젝트이므로 우리나라와는 연구 환경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만큰 자유롭게 일할 수 없겠죠. 하지만 KSTAR보다 부피로 비교해25배 큰 핵융합로를 짓는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새롭게 배울 부분이 많을 거란 기대로 큽니다.”

 

박 본부장은 스스로를 ‘건설 현장에서 30년을 보낸 필드 엔지니어’라고 지칭한다. 그는 2001년부터 KSTAR 토카막 주장치 건설에 뛰어들어 2008년 첫 플라즈마 생성의 기쁨을 함께 한 KSTAR 건설 주역 중 하나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거대장치인 포항 가속기 연구소의 방사광 가속기와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의료용 가속기(Cyclotron) 건설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제 삶을 놓고 보면 10년 주기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더라고요. 1983년부터 1990년까지는 의료용 가속기, 1991년부터 200년까지 방사광 가속기, 그리고 2001년부터는 KSTAR건설까지, 이제 ITER는 새로운 10년을 여는 프로젝트네요. 아마 운명인가 봅니다.”

 

사실 박 본부장은 오래 전부터 ITER 합류를 고민해왔다. 주변의 권유도 많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ITER건설을 위해 국내 조달품목을 담당하는 ITER 한국사업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였다. KSTAR 건설 당시 장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도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KSTAR가 설계, 건설, 운영까지 한번에 성공하자 국내외에서 찬사가 쏟아졌고 박 본부장 역시 자신감을 얻었다.

 

 

▲ 박주식 ITER 한국사업단 기술본부장은 2012년 4월 ITER 국제기구에 당당히 입성했다. 

 

 

그는 ITER 핵융합로와 규모만 다르고 시스템과  운영원리는 같은 KSTAR 장치의 설계, 건설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ITER 프로젝트에 도전하기로 결정했고, 올해 1월 말 임용과 관련한 모든 절차를 통과했다.

 

“국책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서 핵융합 상용화 성패가 달린 ITER 프로젝트에 대한 국가적 사명의식이 크다는 점. 실험용 R&D 장치인 KSTAR에서 핵융합 상용화 검증 장치로서의 ITER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새로운 기술을 한국에 전파하고 싶다는 점을 면접관에게 강조했습니다.”

 

박 본부장은 “제 개인적인 노력도 있었겠지만 핵융합 분양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다는 점과 주변의 도움 등이 저를 ITER로 이끌었다”며 “7개국의 장치제작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조정하는 만만치 않은 작업에서 많은 것을 얻어 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패란 단어는 내 사전에 없다”

 

박 본부장은 프로젝트에 돌입하면 실패를 생각하지 않는다. 통계적으로 성공확률이 10%라 해도 내 것은 100%란 확신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3천여억원의 엄청난 예산과 지속적인 노력이 들어간 KSTAR를 만들 때 외부의 우려 섞인 시선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낸 건 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었죠. 마음은 지식을 지배합니다. KSTAR 운영자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장치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라고.”

 

동료의식 역시 박 본부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중 하나다. “‘Even pain-taking’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죠. 동료들과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면 힘든 시기도 무난히 넘길 수 있습니다.”

 

3월 27일. 그는 프랑스로 떠난다.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 이글은 국가핵융합연구소 2012년 3월호 웹진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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