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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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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7

극한 환경의 인공태양 지키는 최전방 특공대

KFE   
https://fusionnow.kfe.re.kr/post/nuclear-fusion/1404

진공용기 속 1억도 플라즈마 불순문 빼내는 ‘디버터’

한국형 실증로 시대 준비하는 ‘핵심기술’ 도장깨기 5편




핵융합 실증로 개발에 나선 유럽 국가들은 실증로 건설에 있어서 가장 도전적인 과제로 4가지를 손꼽습니다. 첫 번째는 핵융합의 연료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블랑켓 기술, 두 번째는 원격 유지보수 기술, 세 번째는 핵융합 반응에 따라 나오는 불순물 처리, 마지막은 블랑켓을 포함한 디버터의 소재 기술에 관한 것인데요. 이 중 불순물 처리와 소재에 관한 두 가지 과제가 바로 디버터와 관련된 기술입니다. 


토카막을 구성하는 모든 장치가 고온·고압의 극한 환경에서 미션을 수행하지만, 토카막 하단에 위치한 ‘디버터’는 전방 중에서도 최전방을 지키는 특공대와도 같습니다. 핵융합로에서 1억도 고온의 플라즈마를 직접 대면하는 장치이기 때문인데요. 600년 전 조선의 바다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은 “한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명의 적을 떨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디버터의 사명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ITER 진공용기 안쪽 빨간색 원 부분이 바로 디버터이다.


디버터, 토카막 여과시스템 그 이상의 존재감 


디버터를 만나기 전, 잠깐 캠프파이어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나무가 타면서 빛과 함께 따뜻한 열기가 전해집니다. 반면 연기와 그을음, 주변으로 날리는 재는 불청객입니다. 


핵융합 역시 연소의 일종입니다.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결합해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면 중성자와 헬륨이 나옵니다. 중성자는 우리가 원하는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반면 헬륨은 핵융합 연소를 통해 발생하는 일종의 ‘재’입니다. 이 외에도 진공용기 내벽의 작은 조각들이 핵융합 반응의 여파로 떨어져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런 불순물들이 플라즈마 중심부로 들어가면 연료의 농도가 떨어지고, 플라즈마 성능도 저하됩니다.


디버터의 존재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토카막 내 재와 불순물을 배출하고 고성능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ITER 연구자들은 디버터를 큰 수영장의 여과 시스템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토카막 내 헬륨을 비롯한 불순물은 걸러서 제거하고 핵융합에 필요한 연료인 삼중수소와 중수소를 다시 넣어주기 때문이지요. 또는 비행기 화장실과도 비교됩니다. 화장실이 비행기 운항과 직접 연결되는 핵심 장치는 아니지만, 화장실 고장 시 정상적인 비행이 어려워 회항하는 사례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디버터는 핵융합 반응에 직접 관여하는 장치는 아니지만, 성공적인 핵융합 반응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장치입니다.


ITER에 설치될 디버터 콘셉트 이미지


 

실증로 디버터가 해결해야 할 4대 과제 “열속, 운전시간, 파워, 폐기물"


“많은 디버터 연구자들이 ‘열속(heat flux)’을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입을 모읍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물리적·공학적 접근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져 왔음에도 말이죠.” 


핵융합연 권성진 디버터연구팀장은 “디버터 개발에 성공하려면 1억도 플라즈마 온도보다 열속, 즉 특정 부위를 단위시간과 단위 면적당 통과하는 열에너지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아직까지 플라즈마의 열속을 견뎌낼 소재가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온의 플라즈마는 초전도자석이 만드는 강력한 자기장 그물에 가둬져 운전됩니다. 이때 디버터는 재와 불순물을 자기장을 따라 배출해내는 데 디버터에 발생하는 열속은 무려 20MW/m2 수준에 달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열속은 단순한 세기가 아닌 시간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우주왕복선 발사 시 추진체가 내뿜는 열속은 약 40MW/m2입니다. 대한민국 우주시대를 활짝 연 누리호는 지상에서 1단 연소를 시작해 목표 고도인 700km에 진입하기까지 521초가 걸렸습니다. 즉, 로켓은 40MW/m2의 열속을 약 9분 남짓 극복하면 됩니다. 하지만 실증로 디버터는 20MW/m2의 열속을 며칠이고 견딜 수 있어야합니다. 


현존하는 재료 중 열적으로 가장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는 것은 텅스텐입니다. 녹는점 3422℃의 텅스텐일지라도 플라즈마의 열속이 집중되면 표면이 침식되고, 심지어 약해진 표면에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충돌해 박히기도 합니다. 녹는점이 3422℃라해서 3422℃까지는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녹는점에 한참 못 미치는 1250℃ 안팎의 온도일지라도 장시간 노출되면 텅스텐 고유의 물성은 훼손됩니다. 고무줄도 오래 당기면 끊어지지 않더라도, 처음의 탄성을 회복하지 못하듯 말이죠. 


해결 방법은 매우 국소적으로 집중되는 열속을 넓고 고르게 퍼트리거나, 혹은 열속을 견딜 수 있도록 충분히 식혀주는 냉각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고체인 디버터에 액체금속을 흘려 열을 식히는 방법을 제안하거나 디버터에 자석을 추가로 장착해 자기장을 넓게 펼쳐 열속을 퍼트리는 방법, 플라즈마 열속이 물리는 구간에 중성입자를 뿌리는 방법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아직 완벽한 해법을 찾아내진 못했지만 연구자들은 핵융합 실증로가 본격적으로 설계되기 전까지 확실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ITER 디버터는 54개의 어셈블리가 모여 조립된다.


ITER의 디버터 실증로에 쓸 수 없을까? 


현존하는 디버터의 최고 모델은 프랑스에서 제작 중인 ITER 장치입니다. 토카막 설계에 따라 디버터의 형상과 위치는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토카막의 맨 아래 부분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라즈마를 가두는 자기장 중앙 부분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ITER 디버터는 54개의 어셈블리가 연결돼 거대한 타원형을 이룹니다. 어셈블리 하나의 무게는 약 9톤인데요. 열속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부분은 30만개의 작은 모노블록으로 조립됐습니다. 30만개의 블럭에 허용되는 공차는 0.25㎜에 불과한데요. 공차를 벗어나 미세하게 튀어나온 모노블록으로 열부하가 집중되면 대면제가 녹을 수도 있는 만큼 정밀한 제작 기술이 요구됩니다. 


‘ITER의 디버터 기술을 실증로에 그대로 적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텐데요. 권성진 팀장은 “실험로와 실증로 사이에는 높은 기술 장벽이 존재한다”며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실제로 전기를 생산하는 실증로는 ITER 보다 핵융합 파워도 더 커야합니다. 하지만 파워와 비례해서 장치의 크기를 키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늘어나는 핵융합 파워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부터 소재 개발까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부연입니다. 


ITER 디버터는 10MW/m2의 열속이 전해지는 20초 운전 5000샷과 20MW/m2 300샷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365일 24시간 운전을 염두해야 하는 실증로의 설계요구 조건은 이보다 더욱 가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ITER는 전기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디버터의 냉각 기능을 우선합니다. 반면 실증로는 블랑켓과 디버터에 가해지는 열까지 모두 전기 생산에 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냉각 방법과 설계를 찾아야 합니다. 더불어 실증로는 10개월 이상 연속 운전에 따른 재료의 방사화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운영 과정에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발생하지 않을지라도 방사능이 장치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만큼인지, 또 오염된 부품은 어떻게 교체해야 할지 설계 단계부터 많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ITER 디버터 제작 모습



실증로를 향한 우리의 도전, 디버터 설계부터 제작·시험까지!


“지난 여름 제주 iFPC에 참석한 ITER 디버터 감독이 KSTAR의 새로운 디버터 전시물을 보고 극찬했어요. 제작 완성도가 우수하다고 말이죠.”


한국의 인공태양 KSTAR는 초고온 장시간 운전 성과 향상을 위하여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카본 디버터 대신 텅스텐 소재로 교체하는 작업인데요. KSTAR의 새로운 디버터는 열속이 통과하는 타깃 부위에 ITER와 동일한 형태의 모노블록을 적용했습니다. KSTAR는 2023년도에 디버터 업그레이드를 완료할 예정이고 이렇게 되면 ITER보다 먼저 텅스텐 디버터의 성능과 특성을 연구할 수 있게 됩니다. 블록은 열을 효과적으로 냉각하기 위해 텅스텐에 구리를 이종접합하는 정밀한 공정을 통해 완성됐고요. 제작된 디버터는 20MW/m2의 초고열속을 500회 주기적으로 가하는 실험에서도 성능이 유지됨을 확인했습니다. 


“업그레이드 된 KSTAR 디버터가 실증로 개발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분명하지만, KSTAR는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즉, 블랑켓 뿐 아니라 디버터에 가해지는 열도 전기로 전환할 수 있는 디버터를 개발한다면 모양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디버터를 개발해야 하는 것이죠.”


권성진 팀장은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핵융합 연구 분야에서 괄목할 성장을 이뤘지만 디버터의 기술 장벽은 여전히 높다고 말합니다. 실증로 제작을 위한 많은 기술이 KSTAR와 ITER의 경험을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지만, 디버터의 경우는 우리나라가 직접 ITER 디버터 제작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데요. 즉, 공개된 논문이나 학회에서 발표된 내용만으로 디버터를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장치보다도 개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고무적인 점은 KSTAR가 새로운 디버터를 개발하며 과학적, 공학적 어려움 해결 못지않게 제작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소하지만 직접적인 과정들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실증로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열속 및 플라즈마-대면재 상호작용을 고려하여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기술, 설계를 완벽한 품질로 구현 가능한 제작기술, 나아가 이를 시험할 수 있는 시험시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첫걸음은 실증로 디버터가 20MW/m2 열속을 견딜 수 있는지, 충돌했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를 예측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될 것입니다.


현재 핵융합연 디버터연구팀은 재료, 물리해석, 진단, 플라즈마와 벽의 상호작용, 공학 분야의 전문가 6명이 각각 한 파트를 담당하며 도전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핵융합연 뿐만 아니라 KAIST, UNIST 등 대학에서도 깊이 있는 물리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포항공과대학에서는 공학연구에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성공적인 실증로 디버터 개발을 위해서는 대학, 연구원, 산업체가 하나의 팀이 되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시너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새롭게 개발한 KSTAR 디버터 카세트 어셈블리(왼)와 전체 조립 예상도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영화 한산에서 이순신이 사천전투에서 패한 거북선의 단점을 보완한 거북선을 앞세운 동시에 한산의 지형과 조류를 꿰뚫는 지략으로 견내량을 지켰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길고도 깊은 고민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듯 실증로를 향한 디버터의 대담한 도전도 탁월한 전략과 전술로 승리하길 한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지난 콘텐츠 보기


도장깨기 1편 ‘세계는 지금, 핵융합 실험에서 실증으로’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nfripr/222763253355


도장깨기 2편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nfripr/222802430316


도장깨기 3편 ‘꺼지지 않는 1억도 초고온 플라즈마를 향한 도전’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nfripr/222840429774


도장깨기 4편 '핵융합 실현을 위한 플라즈마 운전 기술을 확보하라' 바로가기 

 ☞ https://blog.naver.com/nfripr/22285513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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