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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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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8

[세상의 빛 핵융합 연구]Ⅲ. 국제협력, ITER 프로젝트의 출발

시스템 관리자   
https://fusionnow.kfe.re.kr/post/iter/68
핵융합 연구의 공개, 국제협력의 시작 

 

1955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1차 원자력평화이용국제회의. 인도의 가장 뛰어난 핵물리학자로 불리는 호미 바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에는 핵융합이 중심이 될 것이며 20년 안에 핵융합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수많은 각국의 핵융합 관련 학자들은 당시 핵융합 연구가 무기개발을 위한 기밀사항으로 분류되어 회의에서는 침묵을 지키고만 있었습니다. 각자의 나라에서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초창기 핵융합연구는 1956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소련의 지도자인 니키타 흐루시초프와 니콜라이 불가닌이 영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때 항께 방문한 물리학자 이고르 쿠르차토프는 하웰에 있는 영국원자력에너지연구소(UKAEA)를 방문, 핵융합 반응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강의는 비밀리에 핵융합을 연구하던 영국과학자들에게 놀라움과 동시에 큰 흥미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195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2차 원자력평화이용국제회의에서 미국과 영국이 그동안 자국이 극비리에 진행해온 핵융합 성과를 서로 공개했는데, 타국에 비해 뒤쳐진 연구 성과를 내놓을 까바 걱정했던 그들에게 모든 나라들의 연구 성과 수준이 비슷하고 직면한 문제점도 같다는 재미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회의에서 각국의 연구자들은 핵융합 연구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국제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엇습니다. 각국은 핵융합 연구 상호협력을 위해 협약을 체결하기 시작했고 1961년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주관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첫 번째 핵융합 학회(Conference on Plasma Physics and Thermonuclear Fusion) 가 열렸습니다. 이는 후에 핵융합 올림픽이라 불리는 핵융합에너지학회(Fusion Energy Conference)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까지도 핵융합 국제공조를 위한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핵융합 상용화로 가는 지름길, ITER 

 

1968년 소년 노보리시르스크에서 열린 3차 핵융합에너지학회에서 소련 연구팀(쿠르차토프연구소)은 핵융합 장치인 T-3에서 달성한 놀라운 플라즈마의 성능을 발표해 세계 핵융합 학계에서 소련에서 고안된 토카막(Tokamak) 장치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인식되기 시작햇습니다. 이에 세계의 핵융합 선진국들은 앞다투어 자국에 대형 토카막 장치를 설치, 운영하여 핵융합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진정으로 원하는 핵융합을 통한 전기 생산. 즉, 핵융합 상용화를 위해서는 더욱 도전적인 기술적 과제들을 돌파해야 하므로 긴밀하고 체계적인 국제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연구자들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 1985년 제네바에서 열린 미소 정상 회담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에게

미래의 에너지원인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했습니다.[출처 : ITER 홈페이지]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양측 동맹국 사이에서 전 세계 적인 긴장상태가 계속된 냉전시대인 1985년 11월,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제네바 미소 정상회담에서 만났습니다. 이 때,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미국의 레이건 대 통령에게 미래의 에너지원인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공동연구를 제안하게 됩니다.

 

뜻밖의 제안을 받은 미국은 일본 및 유럽공동체(EU) 와 이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하고 소련의 공동협력 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는 호미 바바가 예언한지 30년 만에, 본격적으로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국제공동협력사업 ITER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미국, 유럽연합, 러시아, 일본 등 핵융합 선진 4개국은 1988년 IAEA(국제원자력기구) 산하에 ITER 이사회 를 구성했습니다. ITER 프로젝트는 초반에 상당히 열정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소련의 붕괴, 일본과 미국의 경제 위기, 유럽연합과 일본의 ITER건설장소 유치경쟁 등 몇 가지 이유들로 인해 잠치 주춤 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 제가 다시 살아나고 한국, 중국(2003년), 인도(2005 년)가 새로운 참여국으로 힘을 보태면서 ITER 프로젝 트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기술 국제협력 사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 ITER 개발협정 서명식(2006.11.21) [출처:  ITER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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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각 참여국들은 기나긴 합의 끝에 ITER 장치를 프랑스 남부의 카다라쉬 지방에 짓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2006년 11월 21일 오전9시, 프랑스 엘리제궁에 모인 7개국 과학기술부장관은 공식적으로 ITER 개발협정에 서명함으로써, 깨끗한 미래 에너지를 얻기 위한 인류가 선택한 최상의 지름길 프로젝트 (ITER)가 힘찬 시동을 걸게 되었습니다. 라틴어로 '길' 이란 뜻을 가진 ITER, ITER는 깨끗한 미래 에너지를 얻기 위한 인류가 선택한 최상의 지름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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